1970년대 석유파동과 브레턴우즈 체제의 붕괴 이후 세계경제의 혼란은 세계경제의 운영과 관련하여 두 가지 현상을 초래했다. 첫째, 케인스학파의 영향력이 쇠퇴하고, 통화량 조정을 중시하는 시카고학파가 부상하게 되었다. 케인스학파의 정책 제안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귀결된 반면, 통화론자들은 1970년대 세계경제의 향방을 정확히 예측하는 모형을 제시하였기 때문이다. 둘 때, 세계경제를 운영하는 기제로서 G6/G7의 등장이었다. 지식체계 간 경쟁과 G6/G7출범이 동시대에 발생했기 때문에 G6/G7은 자연스럽게 지식체계 간 경쟁의 장소가 되었다. 1970년대 G6/G7에서 주요 쟁점은 성장/고용과 물가안정이었다. 케인스학파는 유효수요 창출을 통한 불황 탈피를 권고했고, 시카고학파는 통화량 조정을 통한 물가안정에 초점을 맞추었다. 미국, 일본, 이탈리아는 케인스학파의 권고를 수용한 반면, 프랑스는 1960년대부터 고전적 통화론자의 권고를 수용하면서 미국을 압박했다. G6/G7내부에서 쟁점 간 경쟁과 지식체계 간 경쟁은 1980년대 초반가지 이어지다가 통화주의가 G6/G7에서 수용되면서 해소되었다. 통화주의와 G6/G7의 결합이 현재까지 이어져 G8 네트워크는 신자유주의 지식체계와 연관되어 있다.The turbulence in the world economy, which followed the Nixon Shock in 1971 and the first Oil Shock in 1973, was the opportunity for monetarism to gain popularities in policy circles as well as academia. The policy recommendations by the Keynesianism led to the stagflation, while several prominent monetarists predictions and explanations appeared to turn out correct in the 1970s. In addition, the turbulence in the 1970s was helpful in the emergence of G6/G7 as the most important network in managing the world economy. As the emergence of G6/G7 was coeval with the surge of monetarism, G6/G7 became a locus where monetarism and Keynesianism competed against each other. Low growth, unemployment and inflation were major challenges for the summits of G6/G7 to deal with in the 1970s. The United States, Japan, and Italy adopted Keynesian policy recommendations to countervail the economic downturn by utilizing fiscal policies; France and Germany, which already adopted classic monetarism in the 1960s. favored monetarists policy recommendations to deal with inflation by controlling the money supply. Monetarism won over Keynesianism and became the common denominator among G6/G7 policies in tackling domestic economic issues. It helped G6/G7 become a viable network in the world econom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