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들뢰즈의 흄 연구는 젊은 시절의 관심사였을 뿐 이후에는
중요하게 등장하지 않는다고 간주되어 왔다. 하지만 들뢰즈 철학의 핵심에
경험론이 있다고 할 때, 경험론이 바로 흄이라는 이름의 다른 표현임을 알
아야 한다. 초기의 흄 연구는 들뢰즈 철학의 태도와 지평을 이룬다. 나아가
이러한 태도와 지평은 20년 후의 ꡔ철학사ꡕ 기고문을 통해서도 변치 않고
유지된다. 이러한 해석은 젊은 들뢰즈의 사상이 큰 단절 없이 변주
(variation)되면서 성숙기의 철학에 이른다는 해석으로 이어질 수 있다.
흄의 도덕철학적 정향은 들뢰즈의 실천철학적 정향과 일치한다. 들뢰즈가
해석하기에 흄의 관심은 순수 인식론에 있던 것이 아니기에, 흄은 경험론의
급진화를 통해 인식론적 회의주의에 이르며, 마침내는 실천철학적 문제 설
정에까지 가게 된다. 경험론 속에서 모든 것은 실천과 실험의 문제가 되며,
인식에서건 행위에서건 미리 주어져 있지 않은 것을 실천적으로 창조하는
문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