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조선 왕릉에 대한 역사지리적 고찰―풍수적 관련 사실을 중심으로―

Abstract

 이 글은 조선 왕릉의 분포. 입지. 배치 특징과 경관의 조성 및 관리에 대한 풍수적 관련  사실을 역사지리적으로 검토한 것이다. 또 경관상에 드러나는 가시적 형태뿐만 아니라 입지 및 형성 과정을 둘러싸고 전개된 정치권력집단 간의 공간정치적 양상을 주목하였다. 이들은 조선 왕릉이 통시적인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면서, 공시적으로 중국 명. 청대 능과 비교되는 문화적 요소임을 말해주고 있다. 조선 왕릉은 도성을 중심으로 과반수 이상이 20-40리 범위의 외곽에 산포되어 있고 북동쪽과 북서쪽 권역에 집중하였다. 이는 신라와 고려 왕릉보다 광역적이다. 왕릉의 입지 경향은 小盆地의 산기슭에 있어, 신라 왕릉이 평지나 구릉지, 고려 왕릉이 산지의 山腹에 위치하는 것과 다르다. 이는 풍수적 요인이 반영되었기 때문으로생각된다. 同域 내 異陵 간의 거리는 300m 내외가 많으며, 홍살문부터 능까지의 거리는 대체로 150-200m 내외이다. 조선 왕릉의 배치는 남향 범위가 절대적이었다. 능침은 緩斜面의 자연지형을 補土해 만들었고, 명당수 역시 자연지형의 물길에 순응하여 조성하였다. 조선 왕릉은 조선 왕조의 권위적이고 상징적인 경관이었다. 조선 왕릉의 입지 선정 및 遷陵 과정은 왕실 혹은 왕족, 왕과 신하, 신하 간의 정치적 세력 관계가 풍수설을 政略的 수단과 外皮로 하여 나타난 정치사적 결과물이었다. 풍수는 조선 왕릉의 조성 과정 및 경관 축조에 큰 영향을 주었다. 조선 왕릉은 풍수지리적 원리에 따라 능의 위치와 배치, 능역 경관의 조영이 이루어졌기에 풍수적입지경관을 나타내었다. 조선 왕릉의 관리 상태는 해마다 정기적으로 왕에게 보고되었으며 국가의 법전에서 관리 내용 및 담당 역할이 규정되었다. 조정에서는 왕릉의관리를 두고 풍수관료의 풍수적 원리고수의 입장과 儒臣의 經世的 실용 논리가 대립하면서 조정되는 양상이 빚어지기도 하였다. 한국 風水史에서 볼 때 왕릉 풍수는조선시대적인 왕조 정치집단의 사회적 속성을 갖는 풍수 담론의 특징이라고 볼 수있다. 한편 조선 왕릉과 관련한 역사적 유산 중에서, 조선 왕릉의 풍수적 재현물이자 특수지도로서 산릉도가 주목되었다. 산릉도에는 능역을 구성하고 있는 경관 요소들이회화식으로 사실적으로 표현되었을 뿐만 아니라 풍수적 山水 묘사 방식을 보이며자세한 풍수 정보가 표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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