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research outputs found

    Historical recognition of korean history textbooks in high school through linguistic network research: focusing on the meaning structure of the internal development the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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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서는 계량적이고 거시적 접근을 통하여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역사인식을 살펴보았다. 역사인식을 나타내는 용어 16개를 선정하여 이 용어들의 빈도 양상과 이 용어가 중심이 된 연결망의 구조를분석하였다. 그 결과 전근대사 서술과 근현대사 서술 사이에는 사용되는 용어의 종류와 빈도의 분포 등에서 주목할 만한 차이가 있었다. 또한 연결망 구조를 볼 때 제5차와 제6차 교육과정에 해당하는 제3기에이르러 민족, 독립, 운동, 전개를 핵심으로 하는 연결망이 근대사회 운동의 맥락에서 사회 및 농민과 접속하였다. 이렇게 형성된연결 관계를 내재적 발전에 근거를 둔 역사인식의 핵심 구조로 판단했다. 결국, 교과서에서 내재적 발전론의 역사인식은 제3차 교육과정에서 등장하여 제5차 교육과정에서 확고하게 정착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In this paper, the historical recognition of high school Korean history textbooks was examined through a quantitative and macro approach. Sixteen terms representing historical recognition were selected, and the frequency of these terms and the structure of the network centered on these terms were analyzed. As a result, it was possible to identify a remarkable difference in terms of the types of terminology used and the distribution of frequencies between the pre-modern and modern history descriptions. In addition, when we look at the structure of the network, we can see that in the third period, the network of min-jog (nation), dog-lib (independence), un-dong (movement) and jeon-gae (development) was connected with sa-hoe (society) and nong-min (peasant) in the context of modern social movements. The connected relationship thus formed was judged to form the core structure of historical recognition based on internal development. In the end, it can be said that the historical recognition of the internal development theory in textbooks appeared in the third curriculum and was firmly established in the fifth curriculum.OAIID:RECH_ACHV_DSTSH_NO:T201801286RECH_ACHV_FG:RR00200001ADJUST_YN:EMP_ID:A079981CITE_RATE:0DEPT_NM:국사학과EMAIL:[email protected]_YN:NN

    The Theory of Religious Social Movement in Gaebyeok and Japanese Philosophy of Reli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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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년대 문화정치기 천도교 청년층은 을 창간하여 자신들의 종교적 사회개조를 실현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서 그들은 천도교 교리가 사상적 포괄성을 지닌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그것을 사회 일반적 언어로 표현하는 데 주력하였다. 의 체제와 내용은 이 목적에 따라 편성되었다. 의 목차공간은 계몽의 영역⋅소통의 영역⋅대중의 영역으로 구분되는데, 주도층은 소통의 영역에서 서구 근대사조와 인내천에 관한 논설을 게재하는 한편, 핵심공간인 계몽의 영역에서는 세상을 상호동일성의 관계로 보는 인식과 활동주의 도덕이라는 실천방안을 제시하였다. 이런 노력은 다음 단계에 가서 주의(主義)의 형성으로 나타났다. 이돈화 등은 계몽의 영역 중 가장 핵심적인 글인 대표논설을 통하여 당시 유행하던 주류사상을 비판적으로 흡수하여 사람성주의, 범인간적 민족주의, 적자주의 등을 순차적으로 발표하였다. 이때 이전에 보였던 상호동일성 인식과 활동주의 도덕은 주의 형성의 기준으로 작용하였다. 그런데 이런 두 기준은 이돈화가 1910년대 후반에 도입한 일본의 종교철학인 현상즉실재론을 종교적 사회운동의 실천 담론으로 전유하면서 형성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1920년대 개벽의 탄생과 지속에서 현상즉실재론의 영향은 큰 것이었으나, 이돈화와 개벽에서 그것의 존재감은 점점 희미해졌다. 현상즉실재론은 개벽의 통일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두 층위, 즉 종교의 층위와 사회의 층위를 결합하고 사라지는 매개물로 작용하였다.In the 1920s, the young people of Cheondogyo published in the period of cultural politics the first issue of Gaebyeok (meaning the dawn of the world) to realize their purpose of religious social remodeling. Gaebyeok was divided into three areas; enlightenment, communication, and general public. Its leading members carried articles about modern Western thoughts and the doctrine of in-naecheon (the equality of human rights) in the communication part. And in enlightenment, they spread not only both an idea of the world as the relation of mutual identity and a practical plan of activist ethics, but also put out the doctrine of human nature (saramsŏng chuui; 사람性主義), pan-humanistic nationalism (汎人間的 民族主義), and the doctrine of Jeokja(赤子主義). In this process, the theory of phenomenon viz reality (現象卽實在論) played a important role, but its presence gradually faded down thereafter. The Japanese theory played a role as a vehicle which helped combine the different two strata forming the unity of Gaebyeok, religion and society, and then disappeared

    1945∼46 美軍政의 生必品 統制政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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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위논문(석사)--서울大學校 大學院 :國史學科,1995.Maste

    Texts and Minjung by Shin Chae-ho in the 192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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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혁명선언」(1923)에서 힘차게 제시된 민중이 「조선사」 총론(1924)에서는 한번도 사용되지 않았다. 두 텍스트를 텍스트마이닝 방법으로 가공하고 이를 토대로 어휘 연결망 분석을 한 결과, 「혁명선언」과 「총론」은 민중 사용 양상 뿐 아니라 텍스트 구조 측면에서도 뚜렷한 차이가 있었다. 1910년대 후반에서 1920년대 후반에 걸친 4개의 주요 텍스트를 분석대상에 추가했다. 그 결과 운동적 글쓰기(「혁명선언」, 「선언」) 및 소설적 글쓰기(「꿈하늘」, 「용과용」)에서 민중의 사용 여부와 텍스트 장르 간에 긴밀한 상관성이 있음을 확인했다. 반면, 학술적 글쓰기(「총론」, 「서론들」)에서는 텍스트 중심의 이항대립 구조도, 민중의 사용도 관찰되지 않았다. 결국 1920년대 신채호의 사상에서 민중은 민족주의의 갱신이나 아나키즘 수용의 지표가 아니라, 텍스트의 장르별 차이를 드러내는 경계이자 문턱이었다.N

    Yi Tonhwa`s social theory and Ch`ondogyo under Japanese occupation of Korea : centering on hisreligious reformationthe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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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위논문(박사)--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사학과,2005.Docto

    The Subversiveness and Conceptualization of ‘Gaebyeok’ in the Modern Transition Period: Focusing on Donghak and Cheondog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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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서는 19~20세기 초 동학·천도교에서 사용한 ‘개벽’의 용례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 동아시아에서 ‘개벽’의 전통적 의미는‘세상이 열리다’였다. 19세기 중엽 동학교조 최제우는 ‘다시개벽’을제시했는데, 여기에는 ‘세상이 뒤집히다’라는 의미가 들어감으로써전통적 의미를 혁신하였다. 그러나 이런 용례는 그것이 가진 불온성으로 인해 많이 사용되지 못했다. ‘다시개벽’을 잇는 논의는 1910년대 천도교단을 중심으로 나타났다. ‘후천개벽’은 ‘다시개벽’을 계승하되 ‘선천-후천’의 상수학적 사유를 포괄하여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 반면, 이 시기의 논의는 종교교단 차원에 국한되었다. 이와 달리 1920년대에 ‘개벽’은 사회적으로널리 알려졌고 다양하게 의미부여 되었으며, 점진적 발전론 속에서논의되었다. 이런 경향을 ‘개념화’라 부를 수 있으나, 그러한 ‘개념화’는 제한적 범위에 그쳤다. ‘개벽’의 제한적 개념화는 근대적 의미화에 대한 거부로 볼 수 있다. 「검결」의 불온성을 강조하거나, 사회진화론 및 단선적 발전론을상대화하는 사례가 여기에 해당했다. 물론 ‘개벽’은 ‘역사’나 ‘혁명’ 의 경쟁상대가 되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도교 인사들이 ‘개벽’의 사용을 고집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런 태도는 얼핏 보면 진보적 시간인식의 대세 속에서 간헐적 사례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그것은, 신종교를 비롯한 많은 한국인에게 ‘후천개벽’이 확산되고 지속된 사실을 드러내는 단초에 해당한다.N

    문학적 감수성과 역사의 두께 —김현주, 『사회의 발견』(소명출판, 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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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bining Conceptual History and Digital Humanities in East 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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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rth Korean Humanities Data Archive and Digital Humanities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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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북한 인문학 데이터 아카이브를 설계·구축한 논리와 이를 매개로 진행한 디지털인문학 교육 경험을 정리한 것이다. 첫째, 북한 인문학 데이터 아카이브는 학술 정보가 내포한 입체적 성격과 그것들 사이의복잡한 지식 관계망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시맨틱 데이터 프로세싱(SemanticData Processing) 방법론에 근거하여 설계·구축하였다. 둘째,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은 교육부의 혁신융합대학 사업의 일환으로 디지털 인문학 교육 과정을 개설·운영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빅데이터 역사정보 과정의 하나로 시맨틱 데이터 편찬 교과를 도입·개설하였다. 셋째, 시맨틱 데이터 편찬 교과 강의는 북한 인문학 데이터 아카이브와 연계하여 운용함으로써, 북한 인문학 및 한국 근대사에 관한 도메인 지식과 디지털 인문학 방법론인 시맨틱 데이터 처리를 동시에 익히는 융합교육이 가능하도록 했다. 넷째, 시맨틱 데이터 편찬 교과의 수강생은 웹 환경에서 북한 인문학과 한국 근대사에 관한 지식을 다룸으로써, 아날로그 환경에서 지식을 소비하는 수동적 입장에서 벗어나 디지털 환경에서 지식을 생산·유통하는 능동적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아울러 북한 학계가 통시적-공시적으로 지식의 국제적 네트워크 속에 존재함을 확인하고 냉전과 분단 상황에서 전개된 북한 인문학의 특수성을 이해할 수 있었다.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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