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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n the Chinmokhoe-Hoebo, The First Magazine Published by Korean Students in Japan(2)
1896년 2월 15 일 일본 동경(東京)에서 우리 나라 일본유학생틀의 최초의 단체였던 대조선인일본유학생친목회(大朝願人日本留學生親醒會)에서 창간한 《친목회회보》(親睦會會報, 이하 《회보》로 약칭)는 우리 나라 잡지역사상(雜誌歷史上) 우리 손으로 처음 만들어진 국문잡지였다.
본래 이 잡지는 3개 월마다 한 번씩 발행하기로 했으나 제2호는 4개월 만인 1896년 6월 16 일 발행했으며, 제3호 역시 4개윌 만인 10월 23일 나왔고, 제4호부터는 발간비의 부족으로 6개 월마다 발행하기로 결정했으나 제3호 발행 5개월 뒤인 1897년 3월 24일 발행했다. 그리고 제5호는 제4호의 발행 후 6개월 만인 9윌 26일 정상적으로 발행했으나 제6호는 약 7개월만인 1898년 4월 9일에야 나왔다. 그러나 이를 끝으로 《회보》는 종간되고 말았는데 그 이유는 회원들 사이의 불화로 인해 제6호의 발행 이후 곧 친목회가 해체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보》는 창간 이후 2년 2개 월 동안 모두 6호를 발간하면서 우리 나라 일본유학생들 간의 친목과 지식교환 등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모국에 개화사상(開化思想)과 새로운 언론문불(言論文物)을 전파하는 데도 큰 몫을 했으며, 특히 모국에서도 잡지가 나오도록 만드는 데 하나의 중요한 자극제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회보》에 관한 연구는 우리 나라에서 잡지라는 서양 언론문물의 수용과 생성 · 발전 과정을 규명하는 데도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회보》에 관한 연구가 아직까지 우리 나라 언론사학계에서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흔한 영인본(影印本)조차도 나와 있지 않은 실정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회보》에 관하여 고찰해 보기로 하되, 그 창간 배경과 경위 · 목적 · 성격과 제 1호의 내용과 편집 · 조판 체재 등에 관해서는 앞서의 졸고(拙稿)에서 소개했으므로, 여기서는 제2호부터 제6호까지의 발간실태와 내용 등을 간
단히 소개한 뒤 이틀 《회보》가 당시 우리 나라 일본유학생들과 나아가서는 모국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모국에서 잡지의 생성 ·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에 관하여 논의해 보기로 하겠다
A Reappraisal of its Implications of the Bullet Theory in the History of Mass Communication Studies
Introduction Process of Occidental Journalism into Japan in the Late Period of Tokugawa
우리나라 근대언론은 도대체 어떻게 생성 · 발전하게 되었으며, 이는 우리나라 근대언론의 성격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이러한 문제는 우리나라 근대언론을 이해하고 또한 우리나라 근대언론의 특질을 규명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의 규명을 위해서는 우리나라와 지리적 · 문화적은 물론, 언론사적으로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중국 · 일본과 비교하여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
면 중국 · 일본 · 한국 등 동양 제국에서는 전근대적 언론현상들이 근대언론으로 이행, 발전하지 못하고 그 대신 서양의 언론문불들을 도입, 수용하여 근대언론이 탄생하게 되었는데, 이때 세 나라가 각각 서양의 언론문물들을 어떻게 도입, 수용하여 근대언론으로 발전시키게 되었는지를 비교해서 그 차이점들을 고찰해 본다면, 우리나라 근대언론의 특질을 밝혀볼 수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Mass Communication and Its Studies in China : Foreword: Thinking over the "Bukhakron", Look-China Movement, in the Later Period of Yi-Dynasty in Korea
「언론정보연구」 38호에 중국의 언론과 언론학연구에 관한 특집을 낸다면서 그 서문을 서울대학교 언론정보연구소에서 나에게 부탁해 왔다. 그때 불현듯 내 머리에 떠오른 것은, 되놈이 김풍헌(金風憲)을 어찌 안다더냐?라는 속담이었다. 이 속담은 누구나 알다시피, 오늘날 면장(面長) 정도의 지위에 있는 사람도 몰라보는 사람을 탓할 때 일컫는 말이다. 이 속담에서도 보듯이 옛날 우리 나라 사람
들은 중국 사람들을 흔히 되놈이라고 하면서 그들을 낮추어 보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사대주의사상을 갖고 있어 자고(自古)로 중국을 섬겨왔다고 흔히들 말한다. 그렇다면 그 까닭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 이유는 아마도 청(淸)나라 때부터 중국과의 역사적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