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research outputs found
'우경화'의 마법 풀기 : 내셔널리즘의 충돌과 보편 윤리의 획득
『일본비평』 10호의 특집 주제는 현대 일본의 보수 그리고 우익이다. 1990년대 말부터 한국의 언론은 일본의 변화를 줄곧 우경화로 지적해 왔다. 우경화를 저지하려는 일본 때리기가 일본의 우경화를 역사의 필연으로 기정사실화하는 듯도 했다. 우경화가 배외주의를 동반하는 것이라면, 일본의 우경화를 부각시키는 우리의 태도는 반일감정이라는 바이러스를 배양하고 일본의 우경화를 부추기는 역할도 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특집 주제에서 보수와 우익의 개념을 나누었다. 일본사회의 변화를 뭉뚱
그려 우경화로 호도하지 않고, 일본의 현상 변화를 심층적, 역사적으로 분석해 보자는 의도에서다. 현재 일본은 자국의 안전보장을 위해 평화헌법의 개정을 추진할 추세며, 동아시아의 갈등은 역사인식논쟁과 영토분쟁을 넘어서 외교분쟁으로 번졌다. 이러한 사태가 동아시아의 평화를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기 위해서는 비판만이 능사가 아니며, 일본의 우경화 방향과 수위를 정확히 견제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일본의 변화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가 전향적으로 변하기 위해서는 우경화의 현상과 문제의 본질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하, 우리사회에서 전개된 일본 우경화 비판이 놓치기 쉬운 문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의 개인적인 말이 길어져 송구하지만, 특집 주제의 다양한 논의를 심화하기 위한 실마리가 되기를 희망한
제국일본의 로망과 동아시아 민족주의 : 일본낭만파에 대한 기억, 1950~1960년대
일본낭만파(Nihonromanha)는 1930년대 이래 일본의 반근대적 주체성을 추구한 대표적 운동 이다. 이 글은 일본낭만파에 대한 기억이 아시아주의와 관련하는 양상을 고찰했다. 중국혁명과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으로 이어지는1950~60년대에 아시아 민족주의가 고양되었고, 일본에 서는 일본낭만파를 재인식하는 담론이 활발하게 나타났다. 일부 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자들은 GHQ하의 평화적 민주화를 거부하고, 일본 민족주의의 딜레마를 해소하기 위해 모택동주의에 의거했다. 그들은 서구식 근대화에 저항하는 아시아적 주체를 세우려고 했다. 그래야만 서구근대의 노예라는 일본민족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문명의 화산'에서 바라보는 재해와 일본인
현대인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문명의 화산대에서 살아간다(울리히 벡). 3・11 동일본대진재는 방재 선진국 일본의 안전신화를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원자력발전소의 폭발 장면은 자연으로 순환하지 않는 문명의 폭발 가능성을 경고하는 묵시록의 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핵에너지와 핵무기가 예상 가능한 위기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다. 오늘날 재해로부터 지속가능한 삶과 사회의 안전시스템은 무엇인가? 자연과 이웃의 위협을 극복하는 것도, 자연과 이웃과 친화하는 것도 생활세계의 영원한 숙제이다.
그 해답을 일본인에게서 구할 수 없다. 그러나 근대 이후 일본의 정치적 경험과 일본인의 행동양식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거대한 쓰나미가 동일본의 해안도시를 덮친 그날 이후, 우리는 적어도 두 부류의 영상을 보면서 계속 놀라야 했다. 상실과 혼란, 추위와 배고픔 속에서 어떤 아우성도 통곡도 없이 질서정연하게 기다리는 이재민들. 그러나 원자력발전소의 폭발과 핵연료봉의 멜트다운(meltdown)으로 이어지는 비상사태에서 속수무책으로 쉬쉬하는 일본정부와 도쿄전력. 하나는 세계 언론이 칭찬하는 일본인의 절제된 미덕이었고, 또 하나는 일본의 이웃으로서도 공분하지 않을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新米と反米 — 後日本の政治的無意識
[서평]요시미 슌야(吉見俊哉), 『친미와 반미』(新米と反米 — 後日本の政治的無意識, 岩波書店, 2007).문화사회학자인 요시미 순야의 『친미와 반미』는 전후 일본의 정치적 무의식이란 부제를 달고서 2007년 봄에 출간되었다. 한국어 번역서는 『왜 다시 친미냐 반미냐』라는 제목으로 2008년 여름에 벌써 나왔다. 옮긴이가 원제의 이분법적 구도를 깊이 헤아리자는 뜻으로 제목을 바꾼 듯싶다. 하지만 불어난 한국어판 제목을 보니, 친미vs반미가 친일vs반일 못지않게 정치적 선정성과 민족주의 이념의 당파성을 띠고서 선명하게 갈무리되는 한반도의 현실이 떠오른다.
그러나 미국을 둘러싼 오늘의 세계 현실은 그렇게 선명하지도 투명하지도 않다. 추락하는 제국에도 날개는 있겠으나, 2008년 말부터 심각해진 글로벌 경제 위기는 네오콘의 위세와 초강대국 미국의 표상이 영원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문제는 동아시아에서 미국 - 포스트제국을 대신할 질서가 동아시아공동체일는지, 국익과 당파적 이익의 각축장일는지, 아무도 미래를 확신하지 못하는 데 있다. 이러한 때에 친미와 반미는 무엇을 의미하며 어떠한 사태를 불러올 것인가? 두 용어를 둘러싼 의미와 표상들이 돌연 낯설고 의심스럽게 다가온다
Zainichi-Korean Intellectual's Ethno-National Discourse in Korea since 1990s : A Critical Review on Kyung-sik Seo's Discourse for Resistance against Colonialism
서경식은 1990년대에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포함한 전체 민족의 네이션을 주장했다. 그러나 2002년무렵부터 그의 논점이 변화한다. 재일조선인을 민족해방 · 주권국가의 주체에서 난민 · 반(半)난민 으로 재규정했다. 그의 입론은 팔레스타인의 현재적 문제를 재일조선인론에 적용하는 것이었다. 이글은 시대상황에 따라 변화한 서경식의 저항 담론을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1990년대부터 일본은 다문화공생 정책을 추진했다. 재일코리안 사회에서도 다국적, 다민족시민사회를 지향하는 공생론이 대두했다. 그러나 서경식은 공생을 동화로 비판한다. 재일조선인은 일본의 에스닉 마이너리티가 아니며, 전체 민족의 네이션을 건설할 주체라는 것이다. 그는 모든 코리안 디아스포라가 식민지배로 인해 조국에서 추방당했다는 식민지 기원 신화를 만들고, 일본에서 식민주의가 계속되고 있다고 고발한다. 따라서 민족해방의 도달점으로서, 팔레스타인민족평의회(Palestine National Council)와 같은 전체 민족의 주권기구를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모든 코리안의 네이션론은 유대인 디아스포라의 시오니즘과 닮아 있다.
서경식은 상징천황제를 유지하는 일본사회에 시민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본의 천황제민족주의든, 코리안의 반일 민족주의든, 그들이 현실을 비판하고 극복하려는 태도는 닮았다. 그들은시민적 공생에 입각하여 정치적 균열과 차이를 조율하기보다, 전체로서의 민족 논리에 입각하여정치적 의지를 통합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이 글은 서경식의 비타협적 민족담론이 과연 일본과 한반도의 탈식민화, 그리고 아시아의 탈냉전적 평화를 실현하는 데 실질적으로 기여하고 있는지를 되묻고 있다.
In the 1990s, Kyung-sik Seo presented the nation of every Korean, which includes Korean diaspora. Since 2002, however, his argument has changed. He redefined the Zainichi-Korean as a refugee or half-refugee instead of a subject of the sovereign state and the national liberation. Seos argument shows that he has applied the current issue of Palestinians to the theory of Zainichi-Korean.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critically review Kyung-sik Seos discourse of resistance that has changed over time.
Abstract From the 1990s, Japan promoted a policy of multicultural coexistence/symbiosis (Tabunka Kyōsei). The theory of symbiosis which advocates the multinational, multiethnic civil society was popular in the Zainichi-Korean society. However, Kyung-sik Seo criticized the reality of coexistence/symbiosis as the policy for assimilation. He rather argued that Zainichi Koreans are not the ethnic minority but the subject that would establish the nation of every Korean. He further created the myth of the origin, that every Korean diaspora was exiled from the home country due to colonialism, and argued that colonialism still continues in Japan. Therefore, his alternative is that every Koreans sovereign organization such as the PNC(Palestine National Council) must be established. Yet, the theory of nation of every Korean resembles Zionism of Jewish diaspora.
Kyung-sik Seo states that there is no citizen in the Japanese society which preserves the Emperor as the symbol of the state. However, whether it is Japans Emperor-centered nationalism or Koreas anti-Japanese nationalism, both of their nationalism are similar in that they aim to criticize the present reality and overcome it. Rather than mediating political divisions and differences according to civil symbiosis, they attempted to consolidate the political wills based on the logic of nation as the whole. This paper inquires whether Kyungsik Seos ethno-national discourse effectively contributes to Japan and Koreas post-colonialism and further to Asias peace in the post-Cold War era.OAIID:RECH_ACHV_DSTSH_NO:T201634298RECH_ACHV_FG:RR00200001ADJUST_YN:EMP_ID:A078540CITE_RATE:0DEPT_NM:일본연구소EMAIL:[email protected]_YN:NN
Hate Crimes and Anti-Asian Sentiment in the United States : Statistical Reality and Solutions for Racial Coexistence
국제관계의 첨예한 모순이 인종·계층·종교·젠더 등 여러 층위로 스며드는 다민족국가 미국에서 미중분쟁과 COVID-19를 계기로 아시안 혐오가 일어났다. 이 현상에는 동시대 글로벌 사회의 인종갈등, 사회 분열, 치안 불안의 복잡한 양상이 함축되어 있다. 아시안 혐오와 함께 벌어진 Black Lives Matter 운동은 아시안 혐오 문제에 관심이 적었다. 아시아계 미국인은 인구 비중이 적고 범죄에 연루되는 비율도 낮아서, 아시안 혐오는 흑백 갈등과 히스패닉의 문제에 묻히기 쉽다. 궁극적으로 미국 사회의 갈등과 사회안전 문제의 해결 없이 아시안 혐오가 온전히 해소되기는 어렵다. 이글은 아시안 혐오 문제와 함께, 조지 페리 플로이드 사건에서 불거진 경찰 폭력과 총기 난사, 그리고 증오범죄의 문제를 검토한다. 플로이드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BLM과 흑인 사회는 마약과 범죄 문제를 개선할 역량을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시아인들도 미국 사회의 위기를 함께 연구하며 피해자가 솔선하여 혐오를 존중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N
The network of immanent development theory, the border of Minjok responsibility Kajimura Hideki & his era, 1955-1989
이 논문은 내재적 발전론의 형성과 전개를 동아시아 진보진영의 네트워크(1955-1989)에서 고찰한다. 내재적 발전론은 1960-70년대에 형성되었지만, 1980년대에도 한국사 인식의 주요한 방법론으로 활용되었다. 가지무라 히데키는 그 네트워크의 중심에서 활약했던 일본의 한국사 연구자이다. 그는 1960년대에 북한의 역사학을 일본에 소개하였고, 한일회담 반대 투쟁에 관여하였으며, 남한의 민주화 운동을 지원했다. 한일회담을 일본의 식민지 재침략 시도로 규정한 그는 일본인으로서 민족적 책임론을 일관되게 제기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에 한국과 일본의 지적 기반은 다르고 연구 관점의 차이가 존재하였다. 가지무라의 역사학이 한국에 적극 수용되는 동안, 일본에서는 그 현실 분석력이 의심을 받고 있었다. 이 논문은 1980년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학이 놓인 조건을 비교한다. 그리고 북한 역사학에 대한 가지무라의 인식을 검토하고, 그의 민족적 책임론을 비판적으로 재고한다。N
The Legacy of Postcolonialism and the Project for Decolonization
오늘날, 과거 식민지였던 몇몇 지역에서 분쟁과 빈곤이 지속되는 가운데,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이 현실의 식민화 문제를 방치하고 회피했다고 비판을 받고 있다. 현실의 식민지 문제는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의 지역 정세 및 각국의 역사적, 정치적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그러나 탈식민의 과제를 어떻게 풀어내는가는 인간의 독립과 해방, 인류의 진보와 평화에 이르기 위한 시험대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는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이 수용된 한국, 일본, 인도에서 어떤 논의가 생산되고 어떠한 사회사상의 변화가 일어났는가를 개괄적으로 살펴보았다. 그 차이를 지켜보면서 우리는 지구적 차원에서의 탈식민을 위해 함께 실천해야 할 것이다. 탈식민을 위한 연구는 결핍과 모순으로 가득 찬 과거를 비판하거나, 지배 권력에 저항하기 위한 활동만이 아니다. 포스트콜로니얼의 지식인들이 식민지와 제국을 잇는 문제의 해법을 찾아내어 세상을 바르게 바꾸고자 노력할 때 진정한 독립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그 실천적 방향성을 모색하고 있다.N
Zainichi-Korean Intellectuals Ethno-National Discourse in Korea since 1990s: A Critical Review on Kyung-sik Seos Discourse for Resistance against Colonialism
서경식은 1990년대에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포함한 전체 민족의 네이션을 주장했다. 그러나 2002년 무렵부터 그의 논점이 변화한다. 재일조선인을 민족해방 · 주권국가의 주체에서 난민 · 반(半)난민으로 재규정했다. 그의 입론은 팔레스타인의 현재적 문제를 재일조선인론에 적용하는 것이었다. 이글은 시대상황에 따라 변화한 서경식의 저항 담론을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1990년대부터 일본은 다문화공생 정책을 추진했다. 재일코리안 사회에서도 다국적, 다민족 시민사회를 지향하는 공생론이 대두했다. 그러나 서경식은 공생을 동화로 비판한다. 재일조선인은 일본의 에스닉 마이너리티가 아니며, 전체 민족의 네이션을 건설할 주체라는 것이다. 그는 모든 코리안 디아스포라가 식민지배로 인해 조국에서 추방당했다는 식민지 기원 신화를 만들고, 일본에서 식민주의가 계속되고 있다고 고발한다. 따라서 민족해방의 도달점으로서, 팔레스타인민족평의회(Palestine National Council)와 같은 전체 민족의 주권기구를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코리안의 네이션론은 유대인 디아스포라의 시오니즘과 닮아 있다. 서경식은 상징천황제를 유지하는 일본사회에 시민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본의 천황제민족주의든, 코리안의 반일 민족주의든, 그들이 현실을 비판하고 극복하려는 태도는 닮았다. 그들은 시민적 공생에 입각하여 정치적 균열과 차이를 조율하기보다, 전체로서의 민족 논리에 입각하여 정치적 의지를 통합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이 글은 서경식의 비타협적 민족담론이 과연 일본과 한반도의 탈식민화, 그리고 아시아의 탈냉전적 평화를 실현하는 데 실질적으로 기여하고 있는지를 되묻고 있다.In the 1990s, Kyung-sik Seo presented the nation of every Korean, which includes Korean diaspora. Since 2002, however, his argument has changed. He redefined the Zainichi-Korean as a refugee or half-refugee instead of a subject of the sovereign state and the national liberation. Seos argument shows that he has applied the current issue of Palestinians to the theory of Zainichi-Korean.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critically review Kyung-sik Seos discourse of resistance that has changed over time. From the 1990s, Japan promoted a policy of multicultural coexistence/symbiosis (Tabunka Kyōsei). The theory of symbiosis which advocates the multinational, multiethnic civil society was popular in the Zainichi-Korean society. However, Kyung-sik Seo criticized the reality of coexistence/symbiosis as the policy for assimilation. He rather argued that Zainichi Koreans are not the ethnic minority but the subject that would establish the nation of every Korean. He further created the myth of the origin, that every Korean diaspora was exiled from the home country due to colonialism, and argued that colonialism still continues in Japan. Therefore, his alternative is that every Koreans sovereign organization such as the PNC(Palestine National Council) must be established. Yet, the theory of nation of every Korean resembles Zionism of Jewish diaspora. Kyung-sik Seo states that there is no citizen in the Japanese society which preserves the Emperor as the symbol of the state. However, whether it is Japans Emperor-centered nationalism or Koreas anti-Japanese nationalism, both of their nationalism are similar in that they aim to criticize the present reality and overcome it. Rather than mediating political divisions and differences according to civil symbiosis, they attempted to consolidate the political wills based on the logic of nation as the whole. This paper inquires whether Kyungsik Seos ethno-national discourse effectively contributes to Japan and Koreas post-colonialism and further to Asias peace in the post-Cold War era
Beyond the consciousness of Abandoned people in the discourses of Jaeil Joseonin : Thinking of the political subjectivity
조선적의 다수는 1990년대 후반부터 일본 국적과 한국 국적으로 전환했고, 최근에는 조선총련 내부에서도 북한으로부터 독자성을 확보하자는 의견이 대두했다. 조선적을 이탈한 경우에도 한국과 일본에 국가적으로 귀속되기를 거부하며 조선적의 역사적 정체성과 민족적 주체의식을 추구하는 경우가 있다. 이글은 재일동포의 국적 문제를 역사적으로 개관하면서, 특히 조선적 재일조선인의 귀속의식과 기민(棄民)의식이 변화하는 양상을 조명한다. 조선적을 유지하는 재일조선인은 한국이 반북의식을 철회하고 미군을 철수시킴으로써, 민족통일국가로 거듭나야 한다고 믿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정치의식의 전파를 막기위해 2009년부터 한국정부는 조선적 재일조선인의 한국 방문 중 정치활동을 금지하고여행증명서의 발급을 제한했다.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고조되는 과정에서 조선적을 남도 북도 아닌 무국적자로 인식하며 조선적의 자유와 권리를 옹호하고 북한과의 역사적흔적을 소거시키는 현상도 나타났다. 이에 대해 필자는 먼저 조선적의 정치성에 대한 역사적 성찰을 선행시키며, 나아가 남과 북, 일본에 관련한 정치적 문제를 균형 있게 성찰
할 것을 제안한다.This study analyzes Zainichi Korean with Joseon-jeock (Chōsen-seki in Japanese)s senses of belongingness and being abandoned. In general, Korean residents nationalities in Japan are categorized into three groups, Joseon-jeock, South Korean, and Japanese. Although the North Korean government has regarded those with Joseon-jeock as its expatriates, in reality Joseon-jeock has been the temporary status of Japanese foreigner register since 1947. From the late 1990s, many of Zainichi Koreans with Joseon-jeock have changed their nationality to South Korea or Japan. Recently, some of Zainichi Koreans with Joseon-jeock asserted independence of the Chongryeon (General Association of Korean Residents in Japan) from the North Korean government. Even after renouncing Joseon-jeock, some of Zainichi Koreans still have a sense of ethnic subjectivity while they refuse
to belong to Korea or Japan as nation states. Zainichi Koreans (Jaeil Joseonin in Korean) continually maintaining Joseon-jeock have asserted that South Korea has to achieve the unification of North and South through withdrawal of the U.S. Armed Forces and abandoning anti-sentiment against North Korea. To prevent dissemination of their political ideology, the South Korean government has restrained their political activities in its territory, and refused the issue of travel certificate to Zainichi Koreans with Joseon-jeock since 2009. Accordingly, critical public opinion against this harsh policy of the Korean government has risen up. This paper will rethink of Zainichi Koreans with Joseon-jeocks sense of belongingness, and the discourses of Abandoned peopl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