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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타>의 선율과 장단구조 연구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음악대학 음악과, 2017. 8. 김우진.본 연구는 선율과 장단의 진행양상이 어긋나는 의 악곡구조에 주목하여 시작되었다. 의 이러한 특징이 현재 학계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으로부터 기인한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본고에서는 을 비롯한 여러 고악보에 전하는 의 분장・선율・장단 등을 중심으로 악곡구조를 파악하고 현행 와의 연관성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하여 『소영집성』소재 과 현행 의 분장구조를 비교・분석하였으며, 을 비롯한『삼죽금보』・『오희상금보』에 수록된 계열 악곡 및 현행 의 골격선율을 추출하여 이를 중심으로 선율구조를 살펴보았다. 또한 『소영집성』에 수록된 의 원형장단이 여러 시기의 고악보를 거쳐 현재의 장단으로 정착되는 과정을 확인하였다. 본고에서 논의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현행 의 분장구조는 선율진행양상과 어긋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즉 이 선율은 지금과 같이 7장 구성 및 12박 한 행의 기보체계는 선율진행상 부적합하고 『소영집성』소재 의 8장 및 8박 한 행의 기보체계가 더욱 알맞음을 확인하였다.
둘째, 『소영집성』・『삼죽금보』・『오희상금보』이상 세 종의 고악보에 전하는 계열 악곡과 현행 의 선율에서 주요음을 중심으로 골격선율을 추출하여 살펴본 결과 네 악곡은 모두 동음반복구조를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때 최소반복단위는 4박이며, 8박이 한 악구를 구성한다.
셋째, 『소영집성』의 4점 8박 장단은 현행 의 원형장단이다. 이 원형장단은 『오희상금보』6박 장단 및 『금보정선』・『방산한씨금보』・『아악부』의 12박 장단을 거쳐 현행의 장단으로 정착되었다. 의 8박 장단은 6박 장단으로 축소되었다가 다시 12박으로 확대되는 방식으로 변천과정을 겪었다. 이러한 장단변형의 원인은 당시 군영악대에서 연주되었던 의 영향일 것으로 생각된다.
넷째, 현행 는 8박 단위의 선율진행과 별개로 12박 한 장단의 구조로 전승되었다. 즉 의 선율은 매 악구가 8박씩 진행되어 고형(古形)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나 장단은 시대에 따른 변천과정을 겪으며 현행의 12박 장단으로 변형되어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는 19세기부터 고정적으로 유지되어온 선율구조와 시대에 따라 변화되어 온 장단구조를 갖춘 악곡이다. 이는 곧 당시의 음악적 취향을 반영하여 계승과 변천을 능동적으로 활용하였던 음악문화를 반영한다.I. 서론 1
1. 문제제기 및 연구목적 1
2. 선행연구 검토 3
3. 연구범위 및 방법 6
II. 의 분장구조 11
III. 의 선율구조 19
1. 『소영집성』소재 20
2. 『삼죽금보』소재 32
3. 『오희상금보』소재 46
4. 『거문고 정악보』소재 61
IV. 의 장단구조 76
1. 19세기 장단 76
2. 20세기 장단 81
V. 선율과 장단의 구조적 관계 90
VI. 결론 92
참 고 문 헌 94
부 록(참고악보) 96Maste
MS-275에 의한 골 형성 유도 과정에서 Dhx36의 TNAP 전사 조절 기작에 관한 연구
학위논문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치의학과, 2011.8. 이장희.Docto
朱彛尊《靜志居琴趣》의 애정표현 방식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중어중문학과, 2012. 2. 류종목.국문초록
淸代 浙西詞派의 宗主로 평가받는 朱彛尊은 다양한 詞論을 제창하고 이론에 부합하는 작품을 창작하여 淸詞의 부흥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그의 中期 詞集 중 하나인 《靜志居琴趣》는 한 여인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그녀와의 사랑을 시작부터 끝까지 다루고 있는 작품집이다. 사집 전체가 단 한 사람과의 애정을 다루고 있는 것은 中國詞史에서 전무후무한 일로 그 존재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
詞라는 체제는 그것이 탄생된 이래로 줄곧 애정이라는 주제와 함께 발전해왔다. 朱彛尊의 《靜志居琴趣》 역시 이러한 愛情詞 발전의 흐름 속에 있는 사집이지만, 단순히 기존의 愛情詞의 명맥을 잇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성격의 愛情詞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기존의 愛情詞가 대개 화려한 술자리에서 기녀가 노래 부를 거리를 제공하고 그녀들의 아름다운 자태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것이었던 것과 달리, 《靜志居琴趣》는 담백하고 청아한 언어로 작자의 眞情을 토로했다. 《靜志居琴趣》가 기존의 愛情詞와 다른 풍격을 갖게 된 것은 그것이 창작된 이유와 표현하는 대상이 기존의 愛情詞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즉, 처제와의 사랑이라는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지만, 결코 잊을 수도 없는 작자의 실제 情事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금기에 저항하는 애정 관계를 드러낸 것이기 때문에 작품에서는 작자의 복잡한 심리가 드러나게 된다. 이때 숨기고자 하면서도 드러내고자 하는 작자의 모순된 태도는 풍부한 함의를 가진 작품을 탄생시키는 결과를 가져왔고, 이로 인하여 朱彛尊의 《靜志居琴趣》는 愛情詞史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작품집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본고는 朱彛尊의 사집 《靜志居琴趣》를 은밀한 방식을 통한 진실한 애정의 표현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하고자 하였다.
본고에서는 먼저 작자 朱彛尊이 《靜志居琴趣》를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는가를 밝히기 위해 《靜志居琴趣》의 本事에 관한 다양한 논쟁을 비교하였다. 《靜志居琴趣》의 여성 인물이 기녀라고 주장하는 기녀설의 경우, 《靜志居琴趣》가 기녀에게 선사한 작자의 다른 작품들과 풍격 상 차이를 보인다는 점, 사회적인 제약에 의해 억압되고 있는 인물들의 관계를 기녀와의 관계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 등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런가하면 《靜志居琴趣》가 작자의 실제 경험을 다룬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설은 대체로 朱彛尊의 도덕적 허물을 덮어주려는 의도가 보인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그리하여 작품의 本事에 관한 가장 유력한 설은 작품 속 여성 인물을 朱彛尊의 처제로 보는 처제설이다. 《靜志居琴趣》가 작자 朱彛尊의 개인적인 사연을 바탕으로 하였고, 처제라는 특정한 여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는 점은 이제까지의 愛情詞와 분명히 다른 점이다.
《靜志居琴趣》는 발전된 聯章體의 형식을 활용한 자기 서사이다. 작품집 전체가 한 여성과의 情事의 전 과정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거대한 聯章體로서의 성격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작자 자신의 기억의 편린들을 연결하여 하나의 서사로 완성한 것이다. 《靜志居琴趣》를 구성하는 83수의 개별 작품들은 하나의 자기서사로서의 《靜志居琴趣》를 유기적으로 구성하는 부품들이지만, 반대로 하나의 완결된 서사로서의 전체가 개별 작품을 읽는데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또한 본고에서는 애정의 충족과 좌절이라는 측면에서 《靜志居琴趣》의 시공간의 활용을 분석하였다. 《靜志居琴趣》는 현재에서 과거를 되돌아보는 회고체인데, 작품 속 화자는 과거와 현재의 대비를 통해 애정이 좌절된 현실을 인식하게 된다. 이때 제비 意象은 때가 되면 변함없이 돌아오는 존재로도, 떠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 존재로도 나타나서 과거와 현재를 분명하게 대비시킨다. 한편, 《靜志居琴趣》에서는 인물을 만나게 하면서도 억압하는 실내 공간과 애정에 대한 욕망이 충족되는 실외 공간이 대비되며, 부정적인 현실 공간을 초월하고자 하는 인물의 욕망이 반영된 비현실적 공간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현실적 공간은 인물들이 일시적으로 머무는 공간이기 때문에 애정에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동시에 좌절시키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금기에 대응하는 작자의 복잡한 내면세계가 작품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 있는지를 살피고, 이러한 복잡한 내면세계로 인하여 작품이 어떠한 특징을 가지는지를 분석하였다. 드러내고자 하면서도 숨기려는 작자의 모순적인 태도로 인하여 작품에서는 감추기와 드러내기가 계속해서 교차하게 된다. 완곡하고 은밀한 표현은 작품의 함의를 풍부하게 하는데, 이것이 《靜志居琴趣》의 예술적 가치라고 할 수 있다.
본고는 朱彛尊의 《靜志居琴趣》가 詞의 가장 중요한 주제인 애정을 노래하면서도, 기존의 愛情詞와는 어떻게 차별화되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하였다. 《靜志居琴趣》의 차별점은 바로 애정 표현의 방식에 있으며 그것은 결국 《靜志居琴趣》가 작자 자신의 특별한 경험을 다룬 것이라는 점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리하여 진실한 애정을 노래한 자기 서사로서의 《靜志居琴趣》는 고백하려는 의지와 감추려는 욕구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한 뒤에야 비로소 탄생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朱彛尊이 淸代 詞 발전의 선봉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그에 대한 연구, 특히 그의 개별 작품의 가치에 관한 연구가 미흡했다. 그러한 점에서 본고는 朱彛尊 개별 작품집 연구의 시작으로서 의미를 가지리라 본다.中文提要
朱彝尊是清代浙西詞派的開創者, 在詞的理論、 創作、 詞集的編選上, 都有卓越的成就, 因此對清詞的發展產生了重大的影響. 朱彝尊在中期所寫的《靜志居琴趣》八十三首是朱彝尊為一位女子所寫的. 《靜志居琴趣》一整卷詞都在記敘一件事情: 真實地記敘作者與一位女子之間的感情歷程. 如此格局, 在中國詞史上是空前絕後的.
艶詞在中國詞史上佔據絶對優勢, 其內容非常的重要. 在中國詞史上對朱彝尊的艶詞評價非常高, 因為《靜志居琴趣》不僅繼承原本的風格, 還也與從前的艶詞有所區別. 從前的艶詞大都是為狎妓宴飲創作的, 作者以濃艶的筆致強調了妓女的妖艶姿態. 但《靜志居琴趣》的艶詞與從前不同, 以淡白清雅的言語吐露真情. 《靜志居琴趣》與從前的艶詞的區別在於其描寫的物件、 創作的動機, 也就是作者與其小姨之間的熱戀. 朱彝尊對小姨的戀情無論在哪個社會都不能被原諒, 但他的感情仍舊不變, 甚至連小姨去逝以後仍然沒世不忘. 《靜志居琴趣》記敘著違背社會倫理觀念的情感, 因此詞中展示出欲露欲隱的複雜心態. 作者的感情在短短的作品中, 表現得含而不露. 這種隱秘和複雜的愛情表現就是《靜志居琴趣》的審美特質, 因此《靜志居琴趣》在中國艶詞史上很有價值. 筆者認為朱彝尊以隱秘和巧妙的方式表現出真摯的愛情, 所以考察了《靜志居琴趣》中愛情的表達方式.
首先, 筆者探討關於女主人公的各種學說. 有人說《靜志居琴趣》是朱彝尊為妓女所作的作品, 但是《靜志居琴趣》八十三首的風格卻與此說全然不同;在對男女情事的態度上, 《靜志居琴趣》不像是對待妓女時的態度, 《靜志居琴趣》所表現的情事不是可以公開渲染的, 而是被社會制約壓抑著的, 這並不是與妓女間之的情事, 所以歌妓說是不可信的. 此外也有人提出無此事說, 但持此論者實質上不認為並無此事, 只是不下定論而已, 此說大都是為隱瞞朱彝尊在道德上的過失, 難以令人認同. 妻妹說是《靜志居琴趣》為朱彝尊的小姨所作的論點, 此說的考證比較可信, 所以筆者按妻妹說考察了《靜志居琴趣》的表達方式.
《靜志居琴趣》整體堪稱巨大規模的一組聯章詞. 朱彝尊利用聯章體強化敘事性, 記敘自己的感情歷程. 這一敘事是作者自己一連串的回憶組合, 單篇的作品就是片片的回憶. 《靜志居琴趣》中單篇的作品借助于聯章體的結構, 能得到更多意味無窮的闡釋.
朱彝尊利用時間及空間手法表現出愛情中滿足和受挫的情感. 《靜志居琴趣》中大都是憶舊的詞, 話者用抒情的方式感嘆因今昔對比而痛感不幸的現實, 以及在愛情上的受挫感. 此時, 朱彝尊頻繁使用了別燕意象, 作品中拿別燕比喻女人, 它有時歸來, 有時一去不回, 話者抒發出今非昔比之感. 《靜志居琴趣》作品中男、 女主人公被壓迫的室內空間與他們滿足愛情的室外空間有了對照, 也有跨過現實制約的虛幻空間, 但是這種虛幻空間必然有臨時性, 男女主人公的愛情與欲望忽然受挫.
在《靜志居琴趣》作品中, 我們發現作者內心的矛盾與痛苦. 違背社會倫理的愛情本是無望的, 但是作者心中的不安和痛苦使他不能忘情. 這種複雜的內心世界在作品中巧妙地露出. 朱彝尊一方面想要吐露他的真情, 另一方面又想要隱瞞這種不可原諒的情感, 所以在《靜志居琴趣》里至始至終採取交替使用吐露和隱藏的手法. 從這種隱秘和複雜的表達方式中, 可以看出《靜志居琴趣》是篇含義深邃的文學作品.
愛情是中國詞史上最重要的主題, 詞史上艶詞的地位非常高, 寫艶詞的作者、 作品很多. 朱彝尊《靜志居琴趣》也是以愛情為主體的艶詞, 但是它的愛情表達的方式卻與從前的艷詞全然不同, 其根本原因在於《靜志居琴趣》記敘著作者親身的愛情經驗. 總而言之, 《靜志居琴趣》是吟誦作者朱彝尊自身真摯的愛情敘事, 這是一篇徘徊於告白的意志和隱瞞的欲望之間, 苦思創作出的作品.
關鍵詞 : 朱彝尊, 靜志居琴趣, 淸詞, 艶詞, 愛情表現, 聯章體, 自己敍事, 吐露和隱藏Maste
朱彝尊 前⋅後期詞의 창작 양상 변화:明淸 교체기 강남 지식인의 정체성 변화와 관련하여
학위논문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인문대학 중어중문학과, 2018. 8. 류종목.본고는 淸代 초기 詞壇의 영수인 朱彝尊의 前⋅後期詞 창작 양상의 변화를 明淸 교체기 강남 지식인의 정체성 변화라는 관점에서 고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구 왕조의 遺民 詞人에서 새로운 왕조의 學人으로 정체성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주이준의 내면세계 변화가 그의 사 창작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것이다.
전통중국에서 한족문화의 중심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강남 지역은 이민족 왕조로의 교체라는 정치적 격변에서 정신적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지역이었다. 강남의 한족 지식인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들보다 문화적으로 열등한 이민족에게 통치받기를 거부하고 遺民이 되기를 선택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정세가 안정되고, 청 정부가 고압 정책과 회유 정책을 동시에 활용하여 지식인 계층을 길들이면서, 이들은 서서히 정신적인 변화를 맞이하였고 마침내 통일 정부 안으로 흡수되었다. 본고는 주이준 전⋅후기사의 명확한 창작 양상 변화를 바로 이와 같은 명청 교체기 강남 지식인의 정신적 변화의 결과로 본다.
주이준의 사 창작은 나의 내면의 감정을 토로하는 것에서 외부 세계를 탐구하고 기록하는 것으로 그 초점이 옮겨갔고, 개인의 悲哀는 약화되는 대신 지식을 과시하고 문학적 유희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화하였다. 주이준의 전기사는 사의 서정 기능을 극대화한 것으로 작자 개인의 비애의 토로라는 측면에서 분석 가능하다. 본고에서는 사회적 금기를 파괴한 애정 경험에서 비롯된 비애, 士大夫로서의 비애, 그리고 과도기적 단계에서의 제한적 비애 표현으로 구분하여 이를 분석하였다.
사의 가장 대표적인 제재라 할 수 있는 愛情詞의 경우, 주이준은 정형화된 애정의 표현에서 벗어나 실제 애정사의 좌절에서 야기된 비애의 감정을 노래하였다. 실제 인물과의 애정 경험을 소재로 하여 내용적으로 파격을 이루었고,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작품들을 재배치하여 하나의 자기 서사를 완성하였다는 점에서 형식적으로도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작품은 개인의 情의 표현을 긍정하는 작자의 문학관이 반영된 것으로, 주이준의 애정사는 전통적인 애정사의 한계를 극복하고 작자의 자기 서사를 완성하여 개인의 진실한 감정을 토로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주이준이 遊幕 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창작한 ≪江湖載酒集≫의 경우, 遺民과 客으로서의 주이준의 사대부적 비애를 표출하였다. 작자는 공간의 통시적인 인식을 통해 유민으로서의 역사의식을 드러내었고, 시간의 유한성을 인식하여 변화하는 시간에 대한 경계를 드러냄으로써 실의한 客의 비애를 표출하였으며, 교유 과정에서 客으로서의 동지 의식을 드러내나 이 관계는 결국 일시적일 수밖에 없음을 자각하여 내면의 갈등을 드러내었다.
주이준 사 창작의 전기에서 후기로 넘어가는 시점에 창작된 ≪蕃錦集≫은 내용적으로는 여전히 나의 감정을 토로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형식적으로는 학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集句라는 방식을 사용함으로써 學人의 사로의 이행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과도기적 단계의 작품으로 볼 수 있다.
비애의 감정을 주로 하여 自我抒情을 목적으로 창작된 주이준의 사는 博學鴻詞科를 통해 관직에 진출할 즈음 이전과 다른 사풍으로 변모하였다. 주이준의 후기사는 이 시기 지식인이 자신의 내면세계에 집중하여 개인의 비애를 토로하는 詞人에서, 문학 창작에서 학문의 가치를 강조하고 지식의 서술에 몰두하는 學人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는 주로 詠物詞의 유행 현상으로 나타났다. 이 시기에 이르러 지식인들의 관심사가 나의 내면의 감정에서 나의 외부에 있는 세계로 옮겨가게 되었고 그것이 外物을 탐구하고 노래하는 영물사의 발전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주이준은 南宋 유민의 영물사집인 ≪樂府補題≫를 발굴하고 유행시켰는데, ≪악부보제≫가 주로 나와 物을 일치시키는 기탁의 방법으로 유민의 한을 표출하였다면, 주이준은 나와 物 사이에 분명한 거리를 두었고, 영물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 사물의 속성을 사로써 표현하였다. 이 시기에 이르러 주이준 사에서 유민 의식은 거의 드러나지 않게 되었다.
주이준의 영물사는 전기사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던 작자 개인의 비애의 감정은 축소되고, 대신 외부 세계를 예리하게 관찰⋅탐구하고 그것을 기록한 결과로서의 學人의 詞의 특징을 보인다. 작자는 그가 접촉하는 세계의 확대에 따라 사물 인식 또한 확대되었는데, 이에 따라 다양한 사물을 物로 인식하고 그것을 영물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이 시기의 주이준 영물사는 다양한 사물을 두루 아울러 그것의 속성을 탐구하고 예리하게 묘사하여 사물에 대한 전면적인 지식을 기록하는 博物志的 성격을 보인다. 작자는 또한 다량의 典故를 사용하여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고 문학적 유희를 추구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주이준의 후기사는 학문을 사 창작의 중요한 요소로 삼아 以學爲詞하는 학인의 사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주이준의 후기사에서 이전과 같은 개인적 감정의 토로가 사라진 것, 특히 유민 의식이 약화된 것은 명청 교체기 小遺民이 갖고 있었던 태생적 한계의 영향이 크다. 1세대 유민과 2세대 유민 후속 세대 사이의 이 과도기적 세대는 확고한 유민 의식을 갖지 못하였기에 언제든 새 왕조에 흡수될 가능성을 안고 있었던 것이다. 더불어 생계유지의 어려움과 현실정치 참여에 대한 욕구 등으로 유민 의식은 더욱 약화되었고 설령 유민 의식이 남아있다 할지라도 청조의 고압적인 정책은 지식인들을 정신적으로 위축시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출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이에 따라 주이준을 비롯한 당시의 지식인들이 자신들이 동일시하는 남송 유민의 사를 애호하면서도 그것의 제재나 형식을 모방하는데 그칠 뿐, 내용적으로는 그에 동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한족 지식인의 문화적 우월성을 지켜주는 博學鴻詞科 정책이 실시되자 유민 집단은 회유될 수밖에 없었다. 이 시기 한족 지식인이 학문, 특히 古學에 몰두한 것은 청조의 통치가 안정됨에 따라 유민 의식이 약화되고 새 왕조에 저항하는 것을 포기하게 된 유민 사회가 마지막으로 남은 그들의 민족적 자존심인 문화적 우월성만은 보존하고자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학에서의 학문 추구 역시 이러한 원인으로 인한 것일 것이다.
學人으로서의 주이준의 후기 사 창작이 특히 영물에 집중하게 된 것은 외부 세계에 대한 當代 지식인들의 관심이 고조되었기 때문으로도 볼 수 있다. 명대 후기부터 서서히 物을 경계하는 玩物喪志의 시각에서 벗어나면서 物을 감상하고 그것의 가치를 논하는 담론이 발전하였으며, 여기에 고증학적인 방법론이 더해져 박물학으로서 物을 탐구하는 경향이 생겼다. 또한 이 시기 지식인의 활동 범위의 확대로 외부 세계와의 접촉 또한 확대되었고 새로운 지식의 범람은 이것을 정리하고 기록하려는 욕구를 발생시켰다. 이러한 기록 의식이 당시 문단의 博學 추구 경향과 결합하여 새로이 인식하게 된 物을 문학을 통해 구현하려는 경향이 나타났으니, 이것이 영물사의 발달을 유도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변화가 하필 사에서 발생하였을까? 그것은 이 시기 詞體에 대한 인식 자체가 변화했기 때문이다. 사는 이제 더 이상 여성적 언어를 통해 한을 표출하는 抒情의 수단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창작하는 행위 그 자체가 문인들 간의 사교와 유희, 학문의 경쟁의 수단으로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이는 정치적 원인과 더불어 지식의 활용을 통한 사의 오락성을 재발견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관직에서 물러나 강남으로 돌아온 주이준은 더 이상 사를 쓰지 않았다. 이는 그가 전⋅후기사 창작을 통해 詞人에서 學人으로 점차 변화하는 과정을 거쳤고, 이 시기에 이르러 마침내 學人으로 그 정체성이 완전히 전환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주이준이 사 창작에서 보여준 일련의 변화는 주이준 개인의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詞人 주이준의 문학적 변화를 가져온 그의 정체성 변화는 당대의 지식인 사회가 전반적으로 겪고 있었던 변화이기도 했다. 즉, 주이준과 그를 이은 절서사파가 사 창작을 통해 드러내었던 의식 세계는 명청 교체기의 과도기적 단계에서 遺民 詞人에서 새로운 왕조의 學人으로 변화해가는 중이었던 지식인 계층이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사가 청대 詞壇의 공감을 사고 호응을 얻어 널리 유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제 1 장 서 론 1
제 1절 연구 동기 및 목표 1
제 2 절 선행 연구 검토 7
제 3 절 연구 범위와 방법 17
제 2 장 명청 교체기 강남 지역과 지식인 사회 29
제 1 절 강남의 문화적 의의와 유민의 발생 29
제 2 절 淸朝의 이중적 통치와 그 영향 35
제 3 절 문인 집단의 활동 범위 확대 41
제 4 절 강남 지역 詞壇의 동향 50
1. 明詞에 대한 반성과 尊體의 시도 51
2. 學古 경향과 南北宋 우열론 59
제 3 장 前期詞: 작자의 내적 비애 표현 64
제 1 절 愛情詞 창작을 통한 眞情의 추구 68
1. 자기 서사로서의 愛情詞와 眞情의 표출 71
2. 사회⋅윤리적 한계로 인한 비애 표현의 양상 96
제 2 절 사대부로서의 내면적 갈등 표출 120
1. 공간의 통시적 인식을 통한 유민 의식의 표현 121
2. 시간의 유한성 인식 131
3. 客으로서의 동지 의식과 그 한계 141
제 3 절 과도기 단계의 詞: 集句를 통한 내면적 갈등의 제한적 표출 148
1. 詩句의 교묘한 배치를 통한 감정의 표현 155
2. 비애의 약화와 餘韻 추구 163
3. 博學 추구와 문학적 능력의 과시 168
제 4 장 後期詞: 學人의 詞로의 이행 178
제 1 절 南宋 詠物詞의 선택적 수용과 비애 표현의 축소 181
1. ≪樂府補題≫의 발굴과 애호 181
2. 遺民詞로서의 성격 약화와 物我의 분리 184
제 2 절 學人의 詞로서의 성격 부각 195
1. 博物志的 성격 196
2. 탐구 대상으로서의 物의 문학적 형상화 216
3. 학식의 과시와 문학적 유희의 추구 237
제 5 장 朱彝尊 詞의 前後期 변화의 의미 245
제 1 절 명청 교체기 小遺民의 불안정한 정체성과 표현의 한계 246
1. 유민 의식의 약화 246
2. 자기 검열로 인한 표현의 위축 252
제 2 절 學人詠物의 발전: 나에서 외부 세계로의 초점 전환 258
1. 物의 가치 발견과 인식의 변화 259
2. 세계의 확대와 문학을 통한 기록 의식의 발달 268
제 3 절 詞體에 대한 인식과 尊體 전략의 변화: 空中傳恨에서 태평성대의 노래로 277
제 6 장 결론: 詞人에서 學人으로 284
【參考文獻】 292
【부록】 303
[부록1] ≪曝書亭集本≫과 ≪浙西六家詞本≫, ≪竹垞太史手定詞稿本≫의 ≪江湖載酒集≫ 작품 배열 비교 303
[부록2] ≪曝書亭集本≫과 ≪浙西六家詞本≫, ≪竹垞太史手定詞稿本≫의 ≪靜志居琴趣≫ 작품 배열 비교 321
[부록3] ≪曝書亭集本≫과 ≪浙西六家詞本≫, ≪竹垞太史手定詞稿本≫의 ≪茶煙閣體物集≫ 작품 배열 비교 326
【中文摘要】 333Doct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