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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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재조명, 재고찰광장은 드디어 ‘광장’이 되었다!광장에 대한 시지각적 해석과 공간적 사유도시 광장의 미기후와 온열쾌적성한국인과 광장[이슈]광장(廣場)은 열린 공간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열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다. 광장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역사의 거대한 물줄기를 바꾼 공간이며, 이는 우리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광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은 어떻게 시작되고 변화해 왔는가? 광장을 광장답게 만드는 동력은 무엇일까? 우리나라의 광장은 어떤 모습일까? 기후변화 하에서 광장 디자인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이번 호 e-환경논총에서는 광장의 변천 과정과 앞으로의 개선 방향에 대해 도시계획 전문가, 교통 전문가, 공학자, 그리고 대학원생의 분석과 의견을 싣는다.표지설명: 광화문, 서울시청 광장과 촛불의 궤도(서예례 편집위원)[이슈] 광장의 재조명, 재고찰 광장은 드디어 ‘광장’이 되었다!4JES 59광장은 드디어 ‘광장’이 되었다!김진애(도시건축가, 전 국회의원)역시 사람의 힘은 가장 크다. 염원은 촛불을 불러오고, 촛불은 광장을 밝히고, 더 많은 촛불과 연대하면서 역사의 변화를 만들어냈다. 이 시대 우리는 광장에서 촛불혁명을 통해 기어코 명예혁명을 이루어냈다. 국민의 승리, 민주주의의 승리, 헌법수호의 승리를 지난한 민주적 절차를 통해 평화적으로 이루어 낸 세계사적 장면이다. 노벨평화상이라도 받을 만하다. 추락하는 대한민국의 국격, 역행하는 민주주의, 무시당하는 헌법 정신과 주권, 추악한 국정농단에서 비롯된 모욕감과 치욕감을 견딜 수 없게 되었을 때 시민들은 광장으로 나왔다. 참을 수 없어서 나왔고 참지 못해서 나왔다가 광장에서 다른 촛불을 만나고 소통하면서 스스로를 힐링했고 같이 행동했고 드디어 나라까지 구했다. 대통령 탄핵을 소추한 것은 국회, 탄핵 판결을 한 것은 헌법재판소이지만 그 역사를 만든 것은 시민들이 든 촛불의 힘이었다.     ‘광장’이란 말이 이렇게 자주 쓰일 때가 없었다. “광장에 나가요!”라는 말이 이렇게 뜨겁게 느껴질 수 없었다. “광장에서 만나요!”라는 말이 이렇게 가슴을 흔들 수 없었다. 광장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던가, 무엇이 되었나, 무엇이 될 것인가? 광장의 정신으로 충만한 우리 사회우리 사회는 참으로 신기하다. 실체적인 광장은 없으면서도 가장 광장적인 마음을 간직하고 있으니 말이다. 광장의 정신은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의 마음에 잠재해 있다가 폭발하는 걸까?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분단, 기나긴 독재, 힘겨운 민주정부의 등장을 거치는 과정에서 축적된 에너지가 폭발하는 것일까? 독립과 해방과 독재 항거와 민주주의와 사람답게 사는 삶에 대한 열망이 어찌도 이렇게 강할 수 있는가?    광장이 없으니 거리로 나섰다. 수없는 역사적 장면들을 만들었다.‘대안문(大安門)’이라고 붙어있던 대한문 앞의 고종 장례식과 삼일만세운동(1919), 수많은 학생운동, 8.15 해방(1945), 4.19 혁명(1960), 한일조약 반대 운동(1964∼65), 유신 반대 운동(1973∼75), 서울의 봄과 광5광장은 드디어 ‘광장’이 되었다![이슈] 광장의 재조명, 재고찰JES 59주 항쟁(1980), 대통령 직선제 운동(1987)과 이한열 열사 노제 등, 굵직한 장면만도 이런 정도다. 기쁜 감격의 순간은 희귀했고 시민의 승리보다는 실패가 훨씬 더 많았다.시민의 운동이자 항거의 현장에는 언제나 억압과 진압이 있었다. 공권력의 시민에 대한 폭력의 현장에 벽돌과 각목과 쇠몽둥이와 최루탄과 화염병이 있었고, 총탄과 탱크마저 있었다. 거리에 흐른 수많은 피가 그 결과고 시민들의 주검마저 초래했다. 너무도 분노스러웠고 너무도 아팠고 너무도 무서웠고 너무도 치욕스러웠고 너무도 슬펐다. 그런데, 아마도 그래서, 사람들 마음속의 광장은 끊임없이 더 커져왔던 것 아닐까? 광장의 정신에 대해서는 작가 최인훈의 불멸의 소설 『광장』 덕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일제강점기에서 독립을 쟁취한 기쁨도 잠깐 세계패권체제에 의해 남북으로 분단되고 다시 민족 내 전쟁이 일어나고 휴전이라는 이름으로 분단이 공고화된 상황에서, 광장을 찾아 남에도 북에도 시도하 으나 결국 어디에서도 속하지 못하고 제 3국으로 향하며 산화하는 주인공의 딜레마는 시대정신을 너무도 강렬하게 포착하 다. 실망을 거듭하면서도 광장에 대한 갈망을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거리를 광장으로 만드는 마술 20세기까지 우리 도시의 전통에는 광장이라는 존재 자체가 없다고 봐도 좋다. 서구의 도시가 곧 광장의 역사인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리스·로마 시대건, 중세 봉건도시이건, 절대군주시대건, 제국주의시대건, 계몽군주시대건, 공산주의·사회주의 사회건, 서구도시에서는 마치 광장을 만들 빌미를 찾으려 도시를 만들기라도 하는 양, 별의별 광장을 만들어냈다. 일제강점기 동안 자칫했으면 서울이 광장과 방사상 도로로 짜인 바로크식 도시로 개조될 뻔한 위험이 있었지만 무산되었고, 일부 신시가지에서 교통광장과 역전광장 정도를 만들었을 뿐이다. 해방과 전후의 도시 복구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민주주의의 상징, 시민주권의 상징, 시민소통의 상징, 경제활력의 상징인 광장을 만드는 시도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기껏해야 5.16 광장(현 여의도 공원)과 같은 독재시대의 관제 광장을 만들었을 뿐이다. 두 가지 이유 때문 아닐까? 첫째는 물리적 실재로서의 광장을 둘 자신이 없다는 것. 학생데모를 막으려고 대학 위치마저 바꾸는 지경이었으니 사람들이 모여들 광장은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북한의 도시에 김일성광장 등 수많은 광장이 도입된 것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도 있지 않았을까? 우리는 광장 대신에 공원을 만드는 걸 더 강조한 경향이 있다.    광장이 없지만 광장 정신으로 가득 찬 우리에게는 거리를 광장으로 만드는 마술이 있었다. 이런 마술적 능력이 있음을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놀라버린 계제가 바로 2002년 월드컵이었다. 붉은 악마들로부터 촉발된 광장에서의 ‘대∼한민국’ 공개응원에 몰린 시민들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깜짝 놀랐다. 우리에게 이렇게 축제처럼 노는 능력이 있다니? 한국 축구를 응원하는 ‘애국 마케팅’측면도 있지만, 태극기를 모티브로 놀고 애국가를 끝까지 부르며 땀에 젖도록 온몸을 쓰고 환호성을 내지르고, 축제가 끝나면 청소까지 깨끗이 하고 집에 가는 모습에 스스로 감격했다. 외신들도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없습니다!” 소리쳤었다.  정치권도 놀랐다. 그래서 드디어 정치권에서 광장을 만들겠다고 나서기 시작했다. 서울광장, 광화문광장, 청계천광장, 숭례문광장 등 ‘광장’이라는 이름을 단 공간이 등장하게 된 것이었다.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의 진보정권이 광장의 정신을 환 했고, 이명박, 오세훈의 신자유주의자 서울시장이 광장을 직접 조성했던, 절묘한 타이밍이기도 했다. 그러나 새로 조성된 광장들이 이벤트성 광장, 스펙타클(spectacle)의 광장이 되어버린 것은 어쩔 수 없는 부작용이었다. 시민에게 심적 여유를 주는 공간을 제공한 것은 분명하나, 그 광장에 끊임없이 채워지는 볼거리, 놀거리라는 관제 문화행사를 연출하는 것이 지나치게 홍보6광장은 드디어 ‘광장’이 되었다![이슈] 광장의 재조명, 재고찰JES 59성, 소비성, 연예적 접근이고 그것이 광장의 정신인가 하는 의문이 들게 만든 것이다. 이들 공간에서 미국 소고기수입 반대, 4대강 사업 반대, 해고 노동자 복직, 세월호 희생자 추모, 가습기 사고 규탄 등 크고 작은 집회들이 열렸다. 그러나 민의에 의한 이런 집회들도 끊임 없이 진압 당했다. 경찰과 전경들과 차벽만 활용한 것은 아니었다. 관제 문화행사들을 빌미로 관제 언론이 시민의 소리를 왜곡하기도 했던 것이다. 광장은 드디어 ‘광장’이 되었다 2016, 2017 연말연초 광장에서 일어난 촛불혁명은 광장을 드디어 광장답게 만든 국민의 힘이다. 우리 역사뿐 아니라 세계 역사를 다시 쓴, 창의적이고 염원 가득한 국민의 힘이다. 우리의 광장은 드디어 진정한 ‘광장’이 된 것이다. 시작은 작았지만 결과는 창대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평화적이었다. 경찰은 헌법에 명시된 집회의 자유와 시민보호 원칙을 지켰다. 누구도 연행되지 않았고 물대포는 자취를 감췄다. 서울시를 비롯해 많은 지자체들이 교통안내와 화장실 제공과 안전 관리 등 ‘우 각시’ 역할을 자처했다. 그저 구호만 외친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예술문화인들이 그림과 연극과 노래와 퍼포먼스로 광장 속 작은 문화 공간들을 만들어냈다. 많은 시민단체들이 시민들이 직접 무언가 만들고 무언가 같이 하는 행사를 궁리했다. 친구들과 연인과 가족들과 함께 나왔고 혼자 나와도 무색치 않았다. 광장의 정신을 안고도 지난 역사에서 수없이 항거하며 거리에서 피와 눈물로 울분을 토했던 국민들이 처음으로 완벽한 치유의 과정을 거쳤다. ‘우리는 왜 광장을 끝까지 지켜야 하나, 광장의 정신을 끝까지 지켜야 하나?’에 대한 답을 찾았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드는 이른바 ‘탄핵반대집회’의 목소리도 담았다. 그들이 아무리 극우적이고 시민 안전을 위협하고 폭력적인 언사를 쓰더라도 소수의 목소리 또한 광장에 담길 수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지난 삼일절에 나타난 ‘남북으로 분단된 광장의 모습’은 안타까웠고 폭력집회에 대한 시민 톨레랑스가 얼마나 버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 역시 광장의 정신을 통해 스스로를 정화하고 민주 시민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2017년 광장 이후의 광장의 과제 광장의 위대한 승리를 맛본 이제 우리의 광장은 어떤 과제를 가지고 있을까? 광장의 정신을 잊지 않으면서 광장 역시 진화해야 한다. 첫째는 ‘일상의 광장’을 만드는 일이다. 큰 광장에서의 한 번의 승리로 이 세상이 단박 좋아진다고 생각하는 시민은 없다. 그 정도로 시민은 성숙했다. 도시의 광장뿐 아니라, 우리 동네의 광장은 어디일까, 어디에 모일 수 있을까? 일상에 담겨있는 민주주의와 시민 주권이란 무엇일까? 일상의 촛불, 일상의 문화를 어떤 공간에 어떻게 담을까?  둘째, 광장 디자인의 관점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까? 미숙한 광장 디자인에 대한 전문가로서의 죄책감은 이번에 시민의 창의적 힘을 보며 완전히 풀렸지만, 그렇다고 과제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관제 광장을 벗어나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광장은 어떤 모습일까?     셋째, 광화문광장의 세계사적 의미를 어떻게 기려야 할까? ‘헌법수호광장’이라고 이름이라도 새로 지어야 할까? 광화문, 시청 앞, 숭례문, 서울역으로 이어지는 독특한 거리 광장의 줄기에서 일어났던 역사의 의미를 어떻게 기록해야 할까?    “차라리 직접민주주의 해도 되겠어요!”라는 찬사를 들을 정도로 광장의 시민들은 놀라웠다. 광장이 없어도 거리를 광장으로 만드는 능력과 광장의 정신을 가진 우리 시민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필요한 ‘대의민주주의’에 어떻게 광장의 정신을 담아내야 할까? 계속되어야 할 근미래의 과제다.

광장은 드디어 '광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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